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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실종된 민주적 공론장
2019년 02월 20일 (수) 09:51:16 음성투데이 기자 estoday@hanmail.net
   
▲ 김만흠 원장(한국정치아카데미)

한때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됐다.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적 자원들이 모여서 더 나은 지식과 해법을 만들게 되는 것을 말한다. 벌이나 개미, 기러기 같은 생태계의 여러 개체들이 만들어 내는 집합적인 지능을 가리키는 말로 일찍부터 쓰였다. 인터넷 시대에 돌입하면서 다시 부각된 개념이다. 인터넷이 정보의 획득과 참여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면서 집단지성이 더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인터넷과 SNS시대는 집단지성의 기회만이 아니라, 확증편향과 더불어 분열 정치의 자원이 되고 있다. 한국사회 진영 대립의 정치는 인터넷의 확증편향 자원과 결합해 더 극단화되고 있다.

인터넷과 SNS 시대가 만들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는 국제적으로도 우려가 되고 있다. 무수한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자신의 견해를 확증해주는 정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정치적인 진영 논리와 결합하게 될 때 더욱 강화된다. 자유투표(cross-voting)를 말할 때 늘 인용되던 미국의 경우도 진영 싸움의 정당투표나 정파투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트윗정치로 불리기도 하는 트럼프식의 정치는 오히려 공론의 수렴보다는 자극적인 극단의 정치를 동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진실과 공화는 실종되고 자극적인 갈등 정치만 남았다고 미국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러 견해가 만나는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다면 인터넷 시대는 숙의민주주의의 더 나은 환경이다. 그러나 극단화된 일방 주장만이 충돌한다면 인터넷은 정치적 양극화의 매개체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한국사회를 보면 자신들만의 골방의 합창(echo chamber)만 있을 뿐 이견을 수렴하는 공론 영역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공론화, 숙의민주주의를 거론하고 있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진영 대립의 정치가 더 강화되고 민주적 공론화는 뒷전이다.

권력투쟁과 마주하게 되는 정치현실에서 진영대립 현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어느 현실주의 정치이론가는 정치현상을 두고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공존과 공유의 여지가 없는 권력투쟁은 테러나 전쟁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기준을 절대가치로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다. 민주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주체가 되어 이견을 평화적으로 포용하면서 공존하는 원리다. 다양한 견해와 이해관계가 상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능력이 클수록 발전된 민주사회라 할 수 있다.

민주사회의 핵심 기본권이라 말하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도 사실은 이견이 표출될 수 있는 민주적 공론의 무대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집단지성 형성의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인터넷과 SNS가 정치적 진영 논리에 압도되고 있다.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기존의 방송 신문 등의 매체도 공론의 무대 역할을 못하거나 아예 진영논리에 동참하고 있다.

정당과 같은 직접적인 정치 영역 외에도 한국사회는 과도하게 정치화, 정치진영화돼 있다. 방송 공정을 심의하는 것도 다시 진영싸움으로 회귀한다. 세월호 진상규명도 5·18민주항쟁 문제도 진영싸움이 개입한다. 진영 싸움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론장 마련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창조성이 강조되는 4차산업 혁명의 시기라면서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1차원적 인간이 돼버린다. 1960년대 마르쿠제가 규정했던 1차원적 인간이 고도산업사회에 종속돼 이성의 비판적 능력이 마비된 것이었다면 오늘의 한국사회 그것은 진영 싸움, 진영 논리에 종속된 정치적인 인간 유형이다. 권력투쟁에서 그게 유리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적나라한 권력투쟁만 반복될 뿐, 공론을 통한 정치적 진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승자독식의 정치체제에 일부의 비타협적 투쟁 유산이 진영 논리를 더 강화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와 함께 해온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를 개선하자는 제도개혁론이 무력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승자독식 체제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터넷 매체의 자극적 경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존 방송 등의 언론 매체들이 이견이 공존하는 공론의 무대 역할을 좀더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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