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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답사 일번지 순천 1
송광사와 불일암
2013년 10월 04일 (금) 21:34:48 경진수 샘 estoday@hanmail.net

아침부터 시원한 빗줄기가 산사의 정막을 깼다. 여기는 조계산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 깊은 송광사이다. 필자는 지난 여름, 대학 시절 한 번 가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순천을 다녀왔다.

경내에 들어서니, 웅장한 대웅전과 30여동의 전각과 건물들이 승보 종찰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 했다.

송광사는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산을 처음에는 이처럼 송광산이라 불렀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고,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고 한다.

경내에는 이들 16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이 따로 있다. 절 이름을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며,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 송광사도 임진왜란과 현종 8년(1842년) 때의 큰 화재, 1948년의 여수. 순천사건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타는 등 화마는 입었으나, 그 때마다 승려와 신도들의 노력으로 이를 복구하였고,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 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 송광사 대웅전, 우화각에서 바라보는 사자루


마침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시다 나를 보시더니 차 한 잔 나누자 하신다. 물안개 그윽한 산사에서 향 좋은 차를 스님과 함께 마실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이 큰 사찰이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은은한 차향 속에서 몇 년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에 대한 말씀도 들을 수 있어 마음이 훈훈하고 아련해졌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글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스님을 알게 되었고, 천주교 신자인 필자는 종교를 초월하여 스님의 고결하고 청아한 삶에 머리가 숙여지곤 하였다. 송광사에서 바라볼 때, 왼쪽 산 중턱에서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있었고, 그때 수많은 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오셔서 평생을 청빈하게 사시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스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렸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욕심을 갖고 때로는 분에 넘치는 것을 추구하다가 좌절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평생을 청빈하게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나는 내친김에 스님 손수 조촐한 암자를 지으시고, 홀로 20여년을 수행하셨다는 ‘불일암’에 오르기로 하였다.

   
▲ 불일암 무소유길, 불일암 입구

송광사에서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 중턱을 올랐을 즈음, 갑자기 대나무 숲이 나오는가 싶더니 조촐한 사립문 사이로 확 트인 암자의 앞마당이 소박한 뜰을 이루며 눈 앞에 다가왔다. 아! 이곳이 그 ‘무소유’를 탄생시킨 ‘불일암’이었구나! 평소 꽃과 나무를 좋아하시어 암자 주변에는 갖가지 나무가 무성하였고, 고운 여름 꽃이 스님 가신 빈 뜰을 지키고 있었다. 자그마한 밭에는 가지며 오이, 호박, 상추를 심어 자급하셨던 터가 그대로였다. 돌아가신던 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모 언론사에서 방송되었던, ‘법정 스님의 빈 의자’ 속의 그 ‘의자’가 거기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루와 작은 방 두어 칸, 비좁은 부엌이 암자의 전부였다. 부엌에는 최소한의 집기만이 놓여있어 스님이 살아생전 얼마나 소박하게 사셨는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무심히 저 하늘을, 저 산을,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셨을 스님의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나도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다.

암자 바로 앞에는 후박나무 한 그루가 기품 있게 서있었는데, 스님의 유골 일부가 뿌려진 곳이라고 했다. 입적 후 염도 하지 말고 가사 하나 얹어 평소 좋아하셨던 대나무 평상에 누운 채로 보내달라고 유언하신 스님! 산사에서의 수행 생활 중 느끼신 일을 수필로 써서 출간할 때마다 독자의 반향은 대단하였고, 그에 따라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지자 어느 날 홀연히 이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버리고 간 오두막을 찾아 더 호젓이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후박나무 옆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불일암 뜰 아래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수행 정진하시는 스님 한 분이 오셔서 내 손 가득 홍삼캔디를 주고 가신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언제 비가 그쳤는지, 저 멀리 산 중턱에는 비 안개가 피어오르고, 뜰에는 노랑, 보라, 빨강의 꽃들이 고개를 든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청정한 스님의 삶의 철학이 녹아있는 무소유의 한 구절이 이 산, 저 산의 울림으로 들리는 듯 하다.(다음 호에 계속)

   
▲ 법정스님의 불일암, 불일암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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